국제평화주의의 헌법적 보장
성낙인, 헌법학, 308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평화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왔다. 전쟁의 참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일찍이 그로티우스, 칸트 등이 국제평화론을 제창하였지만, 국제평화주의 이념을 제도적으로 실현하지는 못하였다. 이준 열사가 참가하려 한 1907년 제2차 헤이그 국제평화회의는 평화를 위한 현대적 국제회의의 시작이었다. 특히 20세기에 자행된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제평화주의 이념은 국제적으로 더욱 확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평화주의 이념은 최고의 합의문서인 헌법에 명시된다. 각국 헌법에서 국제평화주의의 선언은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전쟁 야기에 대한 책임 의식을 헌법전에 담고 있다. 1949년에 제정된 독일기본법은 강력한 평화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침략전쟁의 거부, 평화교란행위의 금지, 군수물자의 생산·수송·유통의 통제, 통치권의 제한, 양심적 병역거부권, 국제법규의 국내법에 대한 우월 등을 규정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전범국가인 일본은 1946년 헌법에서 교전권의 포기와 전력 보유의 금지까지 규정한 유일한 국가이다.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으로는 한국헌법 등을 들 수 있다.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의무를 국가의 의무로서 헌법에 규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31년 스페인 헌법이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 밖에도 영세중립을 선언한 국가도 있다. 스위스는 1815년 비인회의의 결과 영세중립국이 되었고, 1955년 오스트리아헌법은 영세중립을 선언한다.
각국 헌법에서의 평화유지를 위한 노력은 오늘날 지역안보회의 등을 통하여 상당 부분 결실을 거둔다. 하지만 세계대전은 아니라 하더라도 여전히 국지전이 계속 발발한다. 또한 강대국을 중심으로 군비강화나 신무기개발이 계속되기 때문에, 자국의 안보를 위한 노력은 각국에서 강화된다. 특히 남북 분단의 특수상황에 처한 한반도에서는 경제 대국 일본의 재무장과 중국을 비롯한 한반도를 둘러싼 초강대국의 전력 강화로 새로운 긴장을 초래한다.
일본헌법 제9조
①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영구히 포기한다.
② 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하여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 교전권은 인정하지 아니한다.
<평화와 자유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일본 헌법 제9조
김진기, 일본의 정치와 경제, 194면.
헌법 초안 작성에 즈음하여 맥아더가 초안 속에 반드시 넣어야 할 원칙 중 하나는 전쟁포기였다. 즉 맥아더는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전 세계, 특히 아시아를 전쟁으로 내몬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의 부활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 분명히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미국은 다른 전범들은 책임을 묻더라도 천황제는 남겨 점령통치에 이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연합국 국민들 뿐 아니라 연합국 지도자들 또한 천황제, 특히 히로히토 천황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이에 천황제를 존속시키는 대신 군비 포기가 구상되었으며, 헌법 속에 비무장조항을 넣는다는 방법이 취해졌다. 당시 일본 정부는 상징적 존재에 머무르는 천황제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나타내었지만, 전쟁포기의 규정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각료들도 군부가 지배했던 과거의 정치 체제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 하에서 동서대립이 격화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자, 헌법 제9조는 일본을 점령하고 있었던 미국에게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점령군이 한국전쟁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일본 국내에서의 치안과 군사적 공백을 매울 필요가 있었다. 이에 경찰 예비대가 창설되었다. 예비대는 제9조의 존재를 의식, 국내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경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비대는 이후 보안대·자위대로 규모가 확대되면서 “국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직접 침략에 대하여 우리나라를 방어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하면서 그 성격이 변화하였다. 이에 보수정당 내부에서는 헌법을 개정하여 정당하게 군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개헌론이 대두하였으며, 미국도 대일강화 교섭 이후 헌법개정과 재군비를 요구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자위대가 헌법위반이라는 의견이 강하였을 뿐 아니라 헌법개정과 재군비에 대해서도 일본 국민은 부정적이었다.
<일본의 헌법 제9조로 일본이 얻은 이익과 손해는 무엇일까?>
침략전쟁의 부인
정극원, 헌법상 평화조항에 관한 일고찰, 129면.
제5조
①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②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제6조
①헌법에 의하여 체결ㆍ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②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
우리 헌법 제5조 제1항에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라고 규정하여 평화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전쟁을 침략전쟁ㆍ자위전쟁ㆍ제재전쟁의 셋으로 구분한다면 이들 중에서 공통적으로 금지되고 있는 것은 첫째의 침략전쟁이다. 침략적 전쟁이라 함은 영토의 확장ㆍ국가정책의 관철ㆍ국제분쟁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서 행해지는 무력행사를 말한다.
제5조 제1항에서 말하는 전쟁의 부인은 일체의 전쟁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전논리에 입각하여 침략적 전쟁만을 부인하고 방위전쟁 내지 자위전쟁의 금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은 그 전문에 군국주의에 입각한 전쟁도발과 그로 인한 참담한 재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 ……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또한 침략적 전쟁의 부인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것이다.
제5조 제2항에는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라고 규정하여 군사제도는 국제평화주의에 바탕한 평화지향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국군은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을 억제함은 물론 평화유지자로서의 평화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외국으로부터의 공격을 격퇴하며 국민과 영토를 보호하기 위한 자위전쟁을 수행할 수 있음 물론이다.
나아가 국가의 해외파병과 외국군대의 국내주류허가는 집단적 자위권에 의거한 것이고, 그것이 국회의 승인을 얻을 경우에는 허용된다. 헌법 제5조 제2항의 ‘국군의 사명’도 자위전쟁의 경우에 국한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제6조에도 국제법을 존중하며 국제법에 따라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해 줌으로서 국제사회의 평화적인 공존질서 확립에 함께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외국의 침략이 목전에 있는 상태에서 효과적인 방어를 위해 선제공격을 가한 경우는 침략전쟁인가 방위전쟁인가?>
읽기 자료
헌재 2006. 2. 23. 2005헌마268, 판례집 18-1상,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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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관계를 파악해 보자.
피청구인은 이 사건 조약들과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SOFA)’ 제2조에 따라 미합중국에 평택시 팽성읍에 있는 K-6 기지 부근의 285만 평과 평택시 서탄면에 있는 K-55(오산비행장) 기지 부근의 64만 평 모두 349만 평의 토지를 미군측에 제공하기 위하여 토지매수와 수용절차를 진행 중이다.
청구인 1. 내지 449.는 이 사건 조약들에 따라 수용될 평택시 팽성읍에 있는 K-6 미군기지 인근의 대추리, 도두2리 일대에 토지나 건물을 소유하였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이고, 청구인 450. 내지 606.은 위 조약들에 따라 평택지역에 미군기지가 확장 이전되면 기지에 바로 인접한 마을이 되는 평택시 팽성읍 도두1리, 함정2리, 신대1리, 신대4리, 내리, 동창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고, 청구인 607. 내지 824.는 위 지역을 제외한 평택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고, 청구인 825. 내지 1033.은 평택시 밖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며, 청구인들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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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조약은 청구인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하는가?
오늘날 전쟁과 테러 혹은 무력행위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이므로, 달리 이를 보호하는 명시적 기본권이 없다면 헌법 제10조와 제37조 제1항으로부터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기본 내용은 침략전쟁에 강제되지 않고 평화적 생존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조약들은 미군기지의 이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고, 그 내용만으로는 장차 우리 나라가 침략적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 곤란하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서 평화적 생존권의 침해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