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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자유민주주의

민주주의

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 61면.
새로운 포퓰리스트들은 단지 반민주주의의 한 형태로만 취급해서는 그 특색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그들을 그렇게 성공하게 만든 까닭을 파악할 수도 없다. 옛 극우파들은 공공연히 파시즘을 미화하고 민주주의 전복을 외쳤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트럼프는 선거를 보통 사람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로 본다. 민주주의를 폐지하려는 태도와는 전혀 다르게, 그들은 광범위한 국정 개혁을 희망한다는 국민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열렬히 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들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본질과 미칠 영향을 구별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그 좌절감을 표출하도록 부추기는 자유주의적 제도를 약화시키려는 것이 반자유주의적이지만 민주적임을 인식해야 한다.
대중에 호소력을 가지려면 누구를 포용할 것이냐 만큼 누구를 배제할 것이냐도 중요하다. 포퓰리스트들이 대중을 선동할 때, 그들은 인종, 종교, 사회계층 혹은 정치적 신념이 공통인 사람들을 내집단으로 삼으며, 그 이해관계를 무시해도 별 탈이 없을 사람들을 외집단으로 몰아 배제한다. 그들이 진정한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소수인종이나 종교집단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부추긴다. 끝내 그들의 자유는 침해되고, 자유주의는 무너지게 된다.
자유주의가 무너진 후 결국 민주주의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포퓰리즘 지도자들이 일단 대중의 뜻을 가로막는 자유주의적인 차단책을 다 없애버리고 나면, 그들 자신의 뜻과 대중의 뜻이 충돌하기 시작할 때 대중을 무시하기가 쉬워진다.

자유주의

권력분립이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고, 권력분립이 자유주의 또는 법치주의의 중요한 내용임을 전제로 아래 글을 이해해 보자.
제레미 월드론 같은 법학자는 사법심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론을 편다. 법정의 영향력은 다수의 횡포에 대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처럼 역사적으로 사법심사를 피해온 나라가 미국처럼 강력한 사법심사 제도를 이어온 나라보다 개인 권리 보장에 허술했다고 보기는 전혀 어렵다는 게 월드론의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법원은 낙태 문제처럼 법과 철학 문제가 복잡하게 뒤엉킨 사안을 처리하기에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복잡한 사안은 일반인과 그 대표자들이 녹녹하게 처리할 수준을 넘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드론은 사법심사권이 없는 나라에서 낙태 문제와 같은 사안에 대한 의회의 토론이 매우 수준 높게 진행됨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법심사권이 있는 나라에서는 아직 난항을 겪고 있는 난문제들도 토론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타협을 통해 사회적 합의 도출로 이어질 수 있었다.
월드론의 지적은 설득력이 높지만, 나는 결국 한스 켈젠에서 로널드 드워킨에 이르는 쟁쟁한 이론가들의 사법심사 지지론에 동조하게 되었다. 위기시에 국민의 뜻과 별도로 움직이는 판사들은 취약한 소수자들을 보호하고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에게 맞설 수 있다. 사법심사권은 분명 안전장치인 것이다.
그렇지만 사법심사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 본질을 오도하면 안 된다. 진실은 그 제도가 여러 사안에 있어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다수의 굳은 의지를 좌절시킨다는 것이다. 성적 소수자나 소수 종교 신도들을 보호하는 일은 너무도 중요하므로 국민 다수의 뜻을 무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은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일지라도, 그런 권력을 가진 기구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야 지적으로 불성실하지 않으리라. 다시 말해서, 사법심사는 그것이 개인의 권리와 법치주의를 보호한다는 점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자유주의+민주주의

샹탈 무페, 민주주의의 역설, 15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원래 충돌하는 것 아닐까?>

우리가 근대 민주주의를 논의할 때 그것의 특징이 두 가지 상이한 전통 사이에서 표출된 것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근대사회의 정치적 형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법의 지배, 인권의 보장과 개인적 자유에 대한 존중 등의 가치로 구성되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등과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시, 그리고 인민주권 등의 사상으로 구성되는 민주주의적 전통이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전통 사이에는 여하한 필연적 연관도 없으며, 단지 우연한 역사적 표출만이 있을 뿐이다.
맥퍼슨이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처럼 자유주의는 민주화되었고 민주주의는 자유화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양자 사이의 연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나 양자의 조합은 결코 순탄한 과정이 아니라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라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트겐슈타인처럼 말하자면, 양자의 상응하는 문법에는 구성적인 긴장이 존재하고, 그것은 결코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이한 방법으로 협상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자유민주주의적 체제가 항상 투쟁의 장이 되어온 이유이며, 그러한 투쟁이 역사적으로 정치적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긴장이 상호 간에 전적으로 타자적으로 존재하는 두 원칙 사이의 것으로서 양자 간에 타협될 수 있는 단순한 관계라고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만약 긴장이 그런 식으로 이해된다면 아주 단순한 이원주의가 제도화될 수 있다. 대신에 양자 간의 긴장은 비록 우연적인 계기를 통해서라도 두 원칙의 표출이 일단 나타나면 하나의 원칙의 표출이 다른 원칙의 정체성을 변화시킨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타협”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염”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할까? 결국엔 어떻게 될까?>

<민주주의 없는 자유주의는 가능할까? 결국엔 어떻게 될까?>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자가 국회나 사법부를 공격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 어떤 문제가 있나?>

자유주의 극단화 → 양극화 → 민주주의에 의한 독재자 선출 → 자유주의 파괴 → 민주주의 파괴

읽기 자료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무엇을 의미할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ㆍ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체제를 파괴ㆍ변혁시키려는 것”이다.
헌재 1990. 4. 2. 89헌가113, 판례집 2, 49, 64
내란죄를 처벌함으로써 보호하려는 헌법질서는 무엇인가?
“헌법이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할 것을 다짐한다고 천명하면서(헌법 전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제1조)에 비추어 보면, 형법이 내란죄를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헌법질서는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바탕을 둔 헌법질서를 의미하며, 단순히 집권중인 정치권력이나 그 권력에 의해 유지되는 헌법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헌재 1995. 12. 15. 95헌마221등, 판례집 7-2, 697, 753
2024헌나8 대통령(윤석열) 탄핵 결정문
df2024n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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