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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 국호, 민주공화국

국호 대한민국

서중석, 대한민국 선거 이야기, 45면.
헌법 제1조 제1항은 우리나라의 이름, 즉 국호를 명시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이처럼 국호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국호를 바꾸려면 반드시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나라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조봉암은 ‘한’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불우하고 힘이 없을 때 쓴 이름이니까, ‘고려’라는 이름을 쓸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유진오는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길 원했지만, 북한이 먼저 사용하는 바람에 쓸 수 없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제헌국회 전에 헌법기초위원회에서 투표를 해 보니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어 받아서 ‘한’으로 해야 한다가 17표, 고려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7표, 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게 2표를 얻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이름이 크게 세 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먼 옛적에 요하 중류에서부터 한반도 서북부까지 걸쳐 있었던 지역을 조선이라고 불렀고, 그 지역에 있었던 나라를 조선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고조선이라고 역사책에서 가르친다. 이성계가 나라를 세울 때도 우리 역사에 처음 나오는 옛날 그 조선을 이어받자는 뜻으로 조선이라고 국호를 정했다. 조선 다음으로 예맥족이 세운 나라로 부여와 고구려가 있는데, 고구려는 고려라고도 불렀다. 나중에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북진 정책을 쓰는데,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자고 해서 고려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다. ‘한’도 뜻이 깊은 이름이다, 우리를 가리키는 또 다른 말이 마한, 진한, 변한을 포함하는 삼한이다. 그런데 삼한은 일본에서 한반도 남쪽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국회 본회의에서는 압도적인 다수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위대(大)하며 국민이 주인인(民) 한국(韓國)을 의미한다. 제헌의회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인 조봉암 선생은 나라 이름에 대자를 쓰는 것은 콤플렉스의 발현이라며, 차라리 ‘한나라’로 정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만약 당신이 제헌국회 의원이라면 어떤 이름을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공화국

이준일, 헌법학 강의, 90면.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국가형태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전체주의적 독재국가 또는 전제주의적 군주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① 국가 형태에 관한 논의의 수준을 국체와 정체로 나누어 민주정은 정체를, 공화국은 국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구별해서 보는 견해, ② 국체와 정체의 구분은 인정하되 제1조 제1항은 민주정이든 공화정이든 모두다 정체를 의미하고 국민주권을 규정한 제1조 제2항이 국체를 의미한다는 견해, ③ 이러한 국체와 정체의 구분을 처음부터 부인하는 견해의 대립이 있다는 점이다.
국체와 정체를 구분하는 견해에 따르면 국체는 주권의 소재, 즉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고, 정체는 주권의 행사방법, 즉 주권이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묻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국가형태를 주권의 소재에 따라 군주국과 공화국으로 구분하고, 통치권의 행사 방법에 따라 민주정체와 독재정체, 제한정체와 전제정체, 직접정체와 간접정체로 구분한다.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 주권의 소재 또는 주체가 국민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물론 영국이나 일본처럼 국민에게 주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주국이라 불리는 나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주권의 담당자가 누구인지 하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 주권의 소재를 묻는 국체에 관한 질문은 무의미하다. 결국 주권이 민주적으로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정체와 관련해서도 형식적으로 민주국가임을 선언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아무리 독재국가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독재국가로 부르지는 않는 것이다. 결국 정체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것은 민주정이 실제로 그렇게 실현되고 있는지가 된다. 따라서 국체든 정체든 실제로 국가권력이 민주적으로 행사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국체와 정체를 구분하는 논쟁 자체는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미래에도 민주주의는 보편적인 제도로 남을까?>

공화주의

김경희, 공화주의, 20면.
공화주의는 공화제도를 주장하거나 실현하려는 정치적 태도이다. 동양에서 공화라는 말은 중국 주나라의 려왕이 폭정을 일삼자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왕을 대신해 집정하던 시기(기원전 841-828)를 가리키면서 처음 쓰였다. 왕 없이 정치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의 공화제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말이 영어 단어 republic의 번역어로 쓰이게 된다. republic의 어원은 ‘공공의 것’을 뜻하는 라틴어 res publica이다. 이 말의 의미는 로마 시대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기원전 106-43)가 잘 표현하고 있다. 키케로는 저서 국가론에서 “공화국은 인민의 일들이다. 그러나 인민은 아무렇게나 모인 일군의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동의 이익을 인정하고 동의한 사람들의 모임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인민이란 시민 개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체를 의미한다. 인민이 곧 국가이고, 국가가 곧 인민의 것이다. 인민은 서로 동등한 관계에 있으며, 국가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키케로는 공동의 정의, 법, 이익을 인정하고 동의한 사람들의 모임이자 정치 공동체로서의 공화정은 혼합정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혼합정은 순수정체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순수정체에서는 어느 한 계층이 지배권을 행사한다. 한 사람이 지배하는 군주정, 소수의 귀족층이 지배하는 귀족정, 다수의 민중이 지배하는 민주정을 예로 들 수 있다. 키케로에 따르면 이렇게 한 계층이 권력을 독점한 정체는 처음에는 좋은 정치를 펼칠 수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태와 타락이 스며들어 결국에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지배 계층의 이익을 위한 배타적인 정치를 펴게 된다. 권력의 배타적 독점은 타인과 타 계층에 대한 지배와 부패를 낳는다는 것이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고 공화국이라는 용어를 고집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읽기 자료

중앙일보 2025.04.01 손영준 국민대 미디어 광고학부 교수(일부 축약)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12·3 계엄과 국회 탄핵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제각각 찬탄과 반탄의 마음을 품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는 시위,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시작된 갈등과 혼란이 사회 전체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좋은 삶, 옳은 삶의 다양한 모습을 공감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외피는 자유민주주의지만, 공론장은 진영 논리로 뭉쳐져 있다. 관점과 세계관의 차이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진영 간 불화로 사회 전체가 표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제1조 제1항은 우리의 정체성을 천명한 것이다. 우리 정치체제가 민주주의(democracy)와 공화주의(republicanism)의 결합으로 이뤄졌음을 밝힌 것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주의를 앞세우면 다수의 지배, 집단 갈등, 양극화가 극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헌법정신은 공화주의가 갖는 견제와 균형, 조화 원리를 통해 각자가 상생을 추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는 그동안 민주주의를 주목해 왔다. 그러나 공화주의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었다.
공화주의는 로마에서 본격 시작됐다. 근대 르네상스를 거쳐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 국민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적 축이라 할 수 있다. 공화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이익을 조화하는 사상이다. 법의 지배를 통해 각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누구도 공동체를 임의로 좌우할 수 없도록 권력을 분산하였다. 국정운영은 상호 견제와 균형·합의에 따른다. 모두가 국정에 참여할 길을 열어둠으로써 내부적으로 부패와 분열을 방지하고 또 외부의 침입이 있을 때 함께 방어에 나서도록 하였다.
철학자 필립 페팃은 ‘비(非)지배로서의 자유(freedom as non-domination)’개념으로 공화주의를 설명한다. (중략) 공화주의는 또 임의적 지배 가능성도 경계한다. 입센의 연극 ‘인형의 집’에서 부인 노라는 남편이 부자일지라도 자신을 임의로 지배할 수 있다면 가정은 인형의 집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는 지배자의 선의에 의존하기보다는 예속적 지배구조 자체가 없어야 개인의 자유가 진정으로 확보될 수 있다는 공화주의와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