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요구
헌법 제53조
①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②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 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의 폐회 중에도 또한 같다.
본회의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됩니다. 대통령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서명하고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하며, 15일 이내에 공포합니다. 이로써 법률안은 법률로 성립합니다. 법률안이 정부에 이송된 후 공포나 재의 요구 없이 15일을 지나면 법률로 확정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송된 법률안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때는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에 환부하고, 즉 돌려보내고 재의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폐회 중인 때에도 같습니다. 재의 요구 시 수정 거부 또는 일부 거부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때 국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재의결을 통해 법률안을 확정하여 대통령을 굴복시키거나, 아니면 재의결에 실패하여 대통령의 거부권에 굴복하는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입니다. 재의결에는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게 되어 있습니다. 재의결을 성공시키려면 더 많은 의원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지요. 재의결이 성공하면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되고, 대통령은 더는 거부할 수 없게 됩니다.
재의요구권 행사의 실질적 요건 문제
임지봉, 입법과정에서 대통령 법률안거부권 행사의 바람직한 모습, 334
헌법 제53조 제2항이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어떠한 경우에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구체적 사유를 밝히고 있지 않다. 따라서 법률안거부권 행사의 실질적 요건은 법률안거부권의 제도적 의미와 목적에 비추어 판단될 수밖에 없다.
헌법학자들은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안, 집행불능의 법률안, 국익에 어긋나는 법률안, 정부에 부당한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률안의 경우로 보거나, 대통령이 법률안에 대해 위헌으로 판단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법률안이 공익에 현저히 반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혹은 법률의 집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보거나, 법률안이 위헌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거나 예산상의 뒷받침이 없는 것이라든지 집행이 불가능한 경우 등으로 보거나, 헌법 위반, 기본권 침해의 법률안, 실현(집행)불가능한 법률안, 국익에 위배되는 법률안의 경우로 보거나, 대통령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생각하거나 국가이익에 명백하게 반하거나 법률안의 집행이 불가능하거나 예산상의 뒷받침이 없는 경우 등을 법률안거부권 행사를 위한 실질적 요건으로 본다.
이러한 견해들은 크게 보아 정책적으로 부당하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견해들이다.
이에 비해 법률안의 내용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심 혹은 확신이 있거나, 집행의 책임을 지고 있는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해당 법률의 집행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거나, 법률안에 나타난 정책의 내용이 대통령의 구상과 같지 않는 경우로 보거나, 대통령이 법률안을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하거나 법률안이 정책적으로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하거나 법률안을 집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등의 경우로 보거나, 법률의 위헌성을 전제로 하지 않고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도 대통령이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거나, 우리 헌법 스스로가 분점정부의 출현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에서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대통령과 국회의 대립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면서 분점정부의 입법조정자로서의 대통령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평상시의 헌법적 방안이므로 대통령이 정치적 입장의 차이 혹은 정책의 차이에서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이러한 입장들은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 행사의 실질적 요건을 상당히 넓게 보는 입장들이다.
<재의요구권의 실질적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견해와 넓게 보는 견해, 어느 쪽이 타당할까?>
재의요구권의 종류
고대 로마 공화정의 호민관은 평민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집정관과 원로원의 결정에 대한 절대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처럼 거부의 효력이 절대적이고 의회의 재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절대적 거부권(absolute veto)이라 하며, 오늘날에는 모나코처럼 일부 왕조국가에 남아 있다. 반면에 거부의 효력이 잠정적이어서 의회의 재의결로 입법이 가능한 경우를 정지적 거부권(suspensive veto) 또는 재의 요구권이라고 하며, 유럽, 미국, 일본, 우리나라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취하는 제도다.
오늘날의 거부권 제도는 미국의 대통령제에서 발달한 것으로, 연방헌법 제1조 제7항에 규정되어 있다. 미국에서 양원을 통과한 법안이 대통령에게 송부되면 대통령은 10일 이내에 서명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부권은 의회에 환부하고 재의를 요구하는 방식(환부거부)과 국회의 장기휴회나 폐회 등으로 지정된 기일에 환부할 수 없는 경우에 법률안이 자동적으로 폐기되는 방식(보류거부)이 있다. 거부권 행사로 의회로 환부된 법안을 양원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법률로 최종 확정된다. 미국에서 법률안 거부권은 대통령의 의회에 대한 통제권으로서 자주 활용되고 있으며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는 횟수도 상당히 빈번하다. 대부분의 거부권 행사는 의회의 다수당이 야당이거나, 여당의 일부 의원들이 야당과 동조하거나, 대통령이 여당과 의견을 달리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국에서는 회기 불계속 원칙(discontinuity of session)을 채택하고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의회 회기가 종료되면 그 회기 중 계류 중이던 모든 법안은 자동으로 폐기된다. 이와 같은 구조 속에서 대통령이 법안에 대해 거부 의사를 표시하고 싶더라도, 의회가 휴회(adjourned) 상태라면 해당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낼(return veto) 수단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때 대통령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법안을 보류함으로써 자동 폐기되게 할 수 있는데, 이를 보류거부(pocket veto)라고 한다. 보류거부는 대통령의 재량적 판단이 아니라, 회기 불계속이라는 제도적 조건이 만들어낸 가능성이다.
반면, 대한민국 국회는 회기 계속의 원칙을 따른다. 회기가 바뀌더라도 계류 중인 법안은 계속해서 효력을 유지하며, 다음 회기에서 심의가 이어질 수 있다. 이로 인해 대통령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헌법 제53조 제5항에 따라 15일 이내 이의 표시가 없으면 해당 법안은 자동으로 공포된다. 이러한 법제 구조에서는 보류거부가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며, 일부 학설에서 예외적으로만 논의될 수 있을 뿐이다.
읽을 거리
동아일보 2024-12-02 : [사설]거부권 30회 vs 탄핵 18명… 정치 실종이 부른 참담한 기록들
22대 국회 들어서도 ‘정치 실종’ 사태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각종 법안 단독 처리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도돌이표 소모전이 한없이 반복되고 있고, 감사원장과 검사 등 공직자 탄핵을 둘러싼 다툼도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르면 금주 중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과 ‘농업4법’ 개정안 등 법률안 5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세 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이들 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윤 대통령이 재임 2년 7개월 동안 국회로 돌려보낸 법률안은 30개가 된다. 거부권 행사가 가장 많았던 이승만 정부(12년동안 45회)에 비해서도 훨씬 잦다.
민주당은 대통령 관저의 한남동 이전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2일 발의하겠다고 한다. 김 여사에 대한 수사 부실을 이유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간부 3명에 대해서도 함께 탄핵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이 이른바 ‘탄핵 리스트’에 올린 윤 정부의 공직자는 18명으로 늘게 된다. 그러나 일부는 발의안 자체가 폐기됐고 현재까지 5명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는데 이 중 3명은 기각 판정을 받았다.
거부권 30회, 탄핵 18명은 윤 정부와 여소야대 국회의 정치 실종이 빚은 참담한 기록이다. 87년 체제 이래 제한적이나마 정치가 작동하던 시절엔 여야는 가능한 한 합의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렇게 통과된 법안이 대통령에게 거부당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의회주의자’를 자처했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 거부권 행사가 1차례도 없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대중 정부는 지금처럼 5년 내내 여소야대 정부였다.
공직자 탄핵 추진 역시 지금처럼 잦지 않았고, 대부분 표결 없이 폐기됐다. 소수 야당의 탄핵안 발의는 정치적 의사표시로 여겨졌고, 거대 야당이라 할지라도 탄핵안보다 구속력이 낮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로 정부를 압박하곤 했다. 대통령도 장관 해임 등 정치적 조치를 통해 정국의 돌파구를 열었다. 대통령 탄핵안 외에 이전 정부까지 공직자에 대한 탄핵안 의결은 딱 한 차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자 입법권, 거부권 등만 내세울 뿐 일말의 양보도 타협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다. 또한 서로 정치적 사활(死活)을 건 싸움 속에 상대의 사법 리스크를 키워 정치적 타격을 줄 궁리만 하고 있다. 이런 식의 정치력 부재에 민생도 실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