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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헌법개정: 개헌론

헌법개정의 난이도

헌법의 개정은 너무 쉬워서는 안 됩니다. 너무 쉬운 경우 헌법의 법적 안정성이 침해됩니다. 헌법은 최고규범이며 이것을 기초로 많은 법률이 만들어지고 또 그것을 기초로 시민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최고의 규범이 시시각각 변화한다면 그 아래에 있는 법률과 시민들의 삶에 얼마나 큰 혼란이 야기되겠습니까.
그렇다고 너무 어려워서도 안 됩니다. 개정이 너무 어려운 경우 현실에 뒤떨어진 헌법을 변화시키기가 어렵게 됩니다. 헌법이 세상의 변화를 못 따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바로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헌법개정의 방법은 이러한 양극단을 피하고 중용을 잡는 선에서 선택되어야 합니다. 참고로 헌법이 다른 법률에 비하여 개정 절차가 까다로운 경우 이를 경성헌법이라고 하고, 헌법의 개정 절차와 법률의 개정 절차가 같은 경우 이를 연성헌법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헌법은 경성헌법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헌법개정의 방식

헌법개정의 형식에는 미국 연방헌법처럼 기존의 조항을 그대로 둔 채 개정 조항만 추가하는 증보 형식(additional amendment)과 우리 헌법처럼 기존의 조항을 수정 또는 삭제하거나 새로운 조항을 삽입하는 수정 형식(revision)이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손쉽게 개정하는 데에는 증보 형식이 유리하지만, 그만큼 처음 만든 헌법에 대한 확신과 합의가 튼튼해야 할 것입니다.
일부개정과 전부개정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습니다. 기존 조문의 위치를 대체로 유지하는 가운데 일부 조항을 수정하거나 추가하는 형식이 일부개정입니다. 만약 제23조 뒤에 새로운 조항을 추가하면 추가되는 조항은 제23조의2이라는 조문 번호를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전부개정은 이전의 헌법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것이며, 이때 조문의 전체 순서를 다시 조정하게 됩니다.

국민발안 문제

우리 헌법에는 국민이 직접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국민발안제가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국민발안제는 직접민주제의 방법으로서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의견과 자칫 선동과 혼란의 빌미가 될 수 있으므로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어느 의견이 옳은지 판단하기에 앞서 국민발안제를 도입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되고 운용될 것인지 개략적인 이미지를 그려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헌법개정 국민발안이 활발하게 사용되는 스위스 헌법의 제도를 참고하는 것이 유익하겠습니다.
스위스 헌법 제138조 이하에 스위스 연방헌법 부분 개정을 위한 국민발안 규정이 있습니다. 원하는 안건을 연방 사무국에 제출한 후 18개월 안에 10만 명 이상 서명을 얻어야 합니다. 연방 사무국의 허가가 있으면 국민투표가 시행되는데, 이때 연방정부나 의회는 이 발안에 대한 가부를 권고하고 역제안을 할 수 있습니다. 역제안이 있는 경우 함께 국민투표에 부쳐집니다. 국민발안 및 역제안에 대해 모두 찬성 투표할 수 있고, 세 번째 문항으로 어느 안을 우선할 것인지 표명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 연방헌법 개정과 관련하여 국민발안안과 이에 대한 의회의 역제안이 모두 국민투표에 부쳐질 경우, 각 안은 전체 유권자의 과반수와 전체 26개 주 중 과반수(13개 주 이상)의 찬성을 동시에 얻어야 가결됩니다. 만약 두 안이 모두 이중 다수를 충족하여 가결되었다면, 세 번째 문항인 우선순위 투표 결과에 따라 최종적으로 어느 안을 헌법에 반영할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읽기 자료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제 정부형태는 이원적 대표(double representation)를 특징으로 한다. 즉 대통령과 국회가 각각 국민을 대표한다. 이원적 대표로 인해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 바로 분점정부다. 익숙한 용어로는 여소야대 정국이다. 의원내각제의 경우 국회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하므로 이원적 대표 현상이 없고 따라서 여소야대도 존재할 수 없다.
분점정부가 발생해도 일단 대통령과 국회는 각자의 임기를 간다. 그래서 대통령제는 안정성이 높은 제도라고 말한다. 상생과 타협을 외치는 목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정부와 다수 야당의 대립이 격해지곤 하지만 이것은 정부 권력의 독주를 막는 견제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 대통령제를 바라보던 일반적 시각이다.
이번에 고장이 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대통령이 국회의 본질적 권력인 입법권을 헌법상 재의요구권이라는 이름으로 시종일관 거부했다. 다수 야당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역시 헌법상 탄핵소추 의결을 계속했다. 헌법적 자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대통령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통령 개인의 무지성이 계엄과 내란이라는 파국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만, 어쨌든 현재까지 상황에 이르게 된 경과를 보면 정부-국회의 대립과 헌법적 자제 원칙의 붕괴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과거 조사를 보면 많은 국민이 미국과 같은 4년 중임제 대통령제 채택을 선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단임제는 책임성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원리와 어울리지 않으며, 권력남용과 권력 누수를 동시에 불러오는 불완전한 제도였다. 차제에 4년 중임제 개헌을 하고 어떻게든 국회의원 선거와 동시에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4년 중임제와 대선-총선 동시 선거가 분점정부의 출현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특히 대통령 집권 2기를 위한 선거에서는 분점정부 등장 확률이 조금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여소야대 성적표를 받아 든 대통령은 죽으나 사나 자신의 4년 임기를 여소야대로 보내야 한다.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면 적응할 것이고, 막연한 기대를 품고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현재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4년 중임제와 대선-총선 동시 선거로 여대야소 형성이 유도된다면 가뜩이나 강한 대통령 권력이 더 강해져 남용의 우려가 커지는 것은 아닐까? 일리 있는 지적이다. 따라서 대통령 권력을 제어할 다양한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국무총리 폐지와 부통령 도입, 이중권력을 형성하는 대통령실 구조에 대한 법적 규율, 대통령의 여당 개입을 막는 정당법 조항 강화, 그리고 지방분권과 같은 헌법 또는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4년 중임제와 대선-총선 동시 선거가 대통령의 권력을 강하게만 할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대통령 권력이 강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공천권을 매개로 여당의 구성과 운영에 개입한다는 데에 있다. 만약 대선-총선 동시 선거가 치러지면 당장 자기 선거를 뛰어야 하는 대통령이 여당 공천에 개입할 여지는 줄어든다. 오히려 대통령과 여당 후보가 일종의 러닝메이트로서 대등한 관계를 형성할 여지가 있다.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선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