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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헌법개정

헌법개정의 필요성

대한민국 헌법의 마지막 장인 제10장은 헌법의 개정에 관한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헌법은 한 번 제정해 놓으면 고정된 문서로 남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이 변해도 오래된 헌법이 그 변화와 발전의 발목을 잡는 일이 벌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의 현실이 변화하면 헌법도 그때그때 적절히 수정되어야 합니다. 특히 헌법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극단적인 헌법파괴를 하기 전에, 적절하게 타협하여 파국을 모면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극단적인 파국은 언제나 가장 힘없는 시민들에게 가장 큰 희생을 요구하니까 말입니다. 결국 헌법개정은 규범과 현실 사이의 틈새를 메워, 헌법이 실효성 있는 법, 즉 규범력을 가진 법으로서 기능하도록 합니다.

헌법개정의 의의

헌법의 개정이란 이전의 헌법과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의식적⋅적극적인 작업을 통해 헌법의 조문을 바꾸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전 헌법과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헌법개정은 더는 개정이 아닙니다. 차라리 새로운 헌법의 제정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또 헌법의 조문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해석이 바뀌어 그 실질적 의미가 변화하는 현상도 있습니다. 이것을 헌법의 변천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는 헌법 조항의 의미는 바뀌지만, 헌법 자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헌법개정은 아닙니다. 보통은 헌법의 해석과 그로 인한 변천을 통해 헌법이 변화에 적응하도록 하는데, 그것이 한계에 다다른 경우, 그러니까 조문을 바꾸는 것이 불가피하면 헌법개정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헌법 개정안 발의

헌법 제128조 ① 헌법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②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헌법의 개정 절차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헌법 제128조 제1항에 따라 헌법개정의 제안권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입니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서 헌법개정을 제안할 수 있으며, 국회의원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헌법개정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명시적인 헌법개정금지조항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사한 조항이 있는데, 바로 헌법 제128조 제2항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조항은 개헌의 효력만을 일부 제한하는 이른바 개헌효력 적용대상의 제한 규정이고, 따라서 개정금지조항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 헌정사에 얼룩져 있는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독재를 위한 헌법개정을 막겠다는 국민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조항을 이른바 준(準) 개정금지조항으로 이해할 여지는 있을 것입니다.

공고

헌법 제129조 제안된 헌법 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의 기간 이를 공고하여야 한다.
헌법개정 절차 중에 무시해서는 안 되는 과정이 바로 공고의 과정입니다. 헌법 제129조는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공고하며, 그 기간은 20일 이상 지속되어야 함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고 방법으로는 관보⋅신문게재, 벽보 부착 등이 있습니다.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비판을 통하여 개헌안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를 이루려면 공고의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공고기간 동안 국민은 토론도 하고 무엇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 없이 무작정 국민투표에 붙인다면 그것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민주주의는 오로지 찬반 표결이 있었다고 모두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 의결

헌법 제130조 ① 국회는 헌법 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헌법 제130조 제1항에 따라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국회는 헌법 개정안을 의결하여야 합니다. 아무래도 국회는 일반 국민보다는 더 집중적으로 사활을 걸고 새로운 헌법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절차를 둔 것이겠지요.
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이것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 국회의원에 대한 제명과 같은 최고로 가중된 다수결 요건입니다. 국회 의결은 의원들의 역사적 책임을 분명히 한다는 취지에서 기명식 투표방식으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헌법 개정안 수정의결은 공고제도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습니다.

국민투표

제130조 ② 헌법 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③ 헌법 개정안이 제2항의 찬성을 얻은 때에는 헌법개정은 확정되며, 대통령은 즉시 이를 공포하여야 한다.
헌법 제130조 제2항에 따라 헌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의결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야 합니다. 국민투표가 가결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국민투표에서 통과되면 개헌안은 확정됩니다.
헌법 제130조 제3항은 확정된 개헌안을 대통령이 즉시 공포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반 법률과는 달리 국민투표에 의하여 확정된 개헌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봅니다.

미국과 독일의 헌법 개정

미국 헌법의 개정 절차는 헌법 제5조에 규정되어 있으며, 제안과 비준의 두 단계를 거친다. 먼저 개정안은 연방의회의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제안되거나, 50개 주 중 3분의 2가 요청할 경우 헌법회의를 소집하여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회의 방식은 역사상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고, 지금까지의 모든 개정은 연방의회 제안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제안된 개정안은 각 주의 비준을 통해 확정된다. 주 비준 방식은 주 의회 또는 특별 헌법회의 중에서 연방의회가 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며, 전체 주의 4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개헌이 성립한다. 이러한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미국 헌법은 1789년 발효 이후 2024년 기준 단 27회만 개정되었으며, 그중 첫 10개는 권리장전(Bill of Rights)으로 함께 제정된 것이었다.
독일의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Grundgesetz)은 제79조에 따라 개정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연방하원(Bundestag)과 연방상원(Bundesrat)에서 각각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하며, 주별 비준 절차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구조는 연방제 국가이면서도 개정 권한을 연방 의회에 집중시킨 형태로, 정치적 합의만 있다면 절차상 개정이 비교적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기본법은 1949년 제정 이후 2024년 기준으로 약 70회 가까이 개정되었다. 이처럼 개정 빈도가 높은 이유는 통일 이후 체제 정비, 유럽통합 및 사회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실정적 필요에 따른 것이다. 다만 기본법은 ‘영원조항(Ewigkeitsklausel)’을 통해 민주주의, 연방주의, 법치국가, 인간의 존엄성 등 핵심 질서는 개정 불가능한 영역으로 명시하고 있어, 절차적 유연성 속에서도 헌법적 정체성을 강하게 보호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