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권의 제한: 사형 문제
<사형 폐지,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그 이유는?>
생명권이 보장된다면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빼앗는 형벌인 사형도 금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또 보겠지만 우리 헌법은 제37조 제2항에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합니다. 이 말은 ‘모든’ 기본권이 법률에 따라 제한될 수 있고, 따라서 생명권이라는 기본권도 제한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요건 아래 국민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은 위헌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형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사형은 그 자체로 끔찍하고 잔인한 형벌이라는 점, 오판했을 때 되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점, 사형한다고 범죄가 실제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 등 때문에 사형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많습니다. 실제로 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수 국가가 사형 제도를 폐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이 있어야 범죄를 저지르려는 욕망을 억제할 수 있고, 위험한 범죄인을 완전히 격리하는 효과가 있으며, 이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형은 잔혹한 형벌이지만 아직은 국민의 법 감정상 폐지할 때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폐지와 존치 어느 것이 답이라고 확정 짓기는 어려워도, 적어도 사형이 문명국가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형벌이고 전반적으로 폐지 추세에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로 되어 있습니다.
사형의 폐지가 인간 존엄의 향상과 인권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믿으며, … 사형폐지를 위한 모든 조치가 생명권의 향유에서 전진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확신” (1989년 사형폐지를 위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2선택의정서)
참고로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되고 1990년 우리나라가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조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조약의 ‘제2선택 의정서’는 “사형의 폐지가 인간 존엄의 향상과 인권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믿으며, … 사형폐지를 위한 모든 조치가 생명권의 향유에서 전진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확신”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포기할 권리: 안락사 문제
보통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권리를 포기할 권리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생명권도 포기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자살을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아주 오래전 중세 유럽에서는 자살해 버린 본인 또는 자살을 시도한 본인까지 처벌했습니다. 예컨대 자살한 사람의 시신을 끌고 다니면서 모욕을 주거나 후손의 상속을 금지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자살한 본인에게 해를 가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능하지도 않지만 말입니다. 문제는 자살을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도운 본인 아닌 제3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 문제는 특히나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들의 안락사 또는 존엄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고통을 멈추기 위해 죽으려 하는 사람을 도운 의사나 약사 같은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 형법은 제252조에서 사람의 촉탁 그러니까 부탁을 받거나 승낙을 받아서 살해한 사람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도 마찬가지로 처벌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스스로 죽겠다고 했어도 그를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도운 모든 사람은 엄하게 처벌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민법 제680조(위임의 의의) 위임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형법 제252조(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 등) ① 사람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사람을 교사하거나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에 처한다.
그런데 네덜란드, 오리건주를 비롯한 미국의 몇몇 주 등에서는 일정한 요건 아래 의료인이 말기 환자의 사망을 시술하거나 환자 스스로 죽는 것을 돕는 조력 자살 형태의 안락사 또는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점차 이러한 경향은 확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위험하다는 의견, 특히 주변 사람들의 압력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자살이 발생할 수 있고, 죽음을 경시하는 풍조를 조장하는 미끄러운 경사면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의료기술의 발달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불필요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서, 임종 환자에게 목숨을 연장하는 치료를 일정한 절차에 의하여 중단하는 가장 최소한의 존엄사만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생명에 관한 문제이고 악용의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앞으로도 유의해서 검토해야 하는 것이 존엄사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 하지만 과학기술・의료기술의 발전 등에 따라 이것이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러한 논란이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 강조하고 싶습니다.
<안락사 합법화에 찬성하는가? 어느 범위까지의 안락사에 찬성하는가?>
읽을 거리
대법원, '존엄사' 인정… 허용기준 제시
류인하 기자 2009-05-25 09:17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 해한다" 식물인간 상태 70대 환자가족 '치료장치제거소송' 승소 확정
존엄사(尊嚴死)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로 국내에도 존엄사를 인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존엄사 허용 여부를 두고 빚은 사회적·법률적 논란은 일단락됐으며, 앞으로는 존엄사에 대한 법제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판결은 존엄사를 허용해달라는 사회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회나 행정부가 국민들의 반대여론을 의식해 입법작업을 미루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적극적인 법해석을 통해 입법미비와 현실의 괴리를 메운 판결이라는 점에서 대표적인 '사법적극주의'의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여·77)씨의 가족(특별대리인)이 연세대를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제거소송 상고심(☞2009다17417)에서 대법관 9대4 의견으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 21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생명권은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며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행위를 중단할 것인지 여부는 극히 제한적으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생명이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 역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라는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보호돼야 할 것"이라며 "이미 의식의 회복가능성을 상실해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다면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침해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해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상규에 부합되고 헌법정신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며 "회복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이른 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존엄사 허용기준으로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을 것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사전의료지시가 있을 것 △사전의사가 없을 경우 환자의 평소 가치관·신념 등에 비춰 추정할 것 △사망단계 진입여부는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판단할 것 등을 제시했다.
반면 안대희·양창수 대법관은 "다수의견의 법리에는 동의하면서도 김씨의 경우 주치의 의견에 의하면 회복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설령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더라도 김씨의 평소 언행 등만으로 연명치료 중단을 구하는 '추정적 의사'가 있다고 할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또 이홍훈·김능환 대법관도 "생명유지장치의 제거 등 적극적인 행위를 요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를 계속하더라도 짧은 기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한다"며 "김씨의 경우 기대여명이 4개월 이상 남아 있으므로 이른바 돌이킬 수 없는 사망의 과정에 진입했다고 도저히 볼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김씨는 지난해 2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기관지내시경 검사를 받던 도중 심장이 멈춰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심한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자발호흡도 불가능해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게 됐다. 사실상 식물인간상태가 되자 가족 이모씨 등은 특별대리인으로 나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 평소 어머니의 뜻"이라며 김씨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냈다.
1·2심 법원은 "김씨가 회생가능성 없는 비가역적인 사망과정에 진입했고, 가족들의 진술 등에 비춰보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세브란스병원은 "가족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함부로 김씨의 연명치료 중단의사를 추정하고 또 주치의가 김씨의 기대여명이 남아있다고 판단하고 있는데도 회복불가능한 죽음의 과정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한편 이날 대법원판결 직후 김씨의 가족들은 "사회적 강자의 일방적 횡포에 대한 일침이자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이 사회 구성원들의 바람을 나타낸 판결"이라며 환영하면서 세브란스병원에 인공호흡기를 즉시 제거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김씨의 호흡기가 제거되기까지는 적어도 2주 가량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판결정본 송달까지 약 일주일이 소요되고 병원윤리위원회 등의 의견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원고측 대리인인 신현호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판결에 대해 "치료주권이라는 권력이 의사로부터 환자로 이동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억해야 할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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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적극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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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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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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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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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