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시법주의와 일사부재리의 원칙
헌법 제13조
①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
헌법 제13조 제1항 전단은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 ”라고 하여 이른바 행위시법주의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행위가 있고 난 뒤에 나중에 법률을 만들어서 과거의 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것이 금지된다는 의미입니다. 소급하여, 즉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처벌할 수 없다고 하여 소급효 금지의 원칙이라고도 부릅니다.
일정한 행위가 있고 난 이후에 법률을 만들어서 그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면, 국민은 언젠가 자신의 과거의 행위로 처벌받을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소급효 금지의 원칙은 지난 시간에 언급한 죄형법정주의의 한 내용이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일정한 행위가 있고 난 이후에 만들어진 법률이 처벌을 면제하거나 감경하는 때에도 소급효가 금지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가 된 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새로운 법률의 소급효 인정이 유리하게 작용할 때는 소급효 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제13조 제1항 후단에는 같은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않음이 규정되어 있는데, 이것을 일사부재리의 원칙 또는 거듭처벌 금지의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범죄를 저질러서 이미 처벌이 끝난 행위뿐만 아니라 무죄로 확정된 행위에 대하여도 다시 처벌할 수 없습니다. 피고인이었던 사람을 다시 언제라도 처벌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도저히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안입니다.
소급입법 금지
헌법 제13조
②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헌법 제13조 제2항은 국민이 소급입법에 따라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않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논의해 온 신체의 자유 보장과는 다르게 이후에 공부하게 되는 제23조의 재산권 보장이나 제24조, 제25조의 선거권⋅공무담임권 보장 등과 주로 관련이 있는 규정입니다. 이 또한 국민의 안정적 삶을 위해 마련된 방안입니다.
참고로 소급입법을 진정소급입법과 부진정소급입법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정소급입법은 과거에 이미 완성된 사실 또는 법률관계를 규율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당사자는 과거의 법질서에서 기대했던 신뢰를 보호하고 법적 안정성을 유지할 필요성이 큽니다. 따라서 진정소급입법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부진정소급입법은 이미 과거에 시작하긴 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고 진행 과정에 있는 사실 또는 법률관계를 규율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년 전 집을 샀고 아직도 그 집에 사는데, 이 집에 대하여 입법적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새 입법을 하면서 과거의 법적 관계 또는 신뢰를 존중해야 할 의무가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합니다. 따라서 부진정소급입법은 진정소급입법보다 허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재산세가 만원인 집을 10년전에 사서 살고 있다. 이 집의 재산세를 2만원으로 올리는 것은 소급입법금지 위반일까?>
연좌제 금지 또는 자기 책임의 원칙
헌법 제13조
③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헌법 제13조 제3항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거 전근대 시대에 역모와 같은 중대 범죄가 드러난 때 가족과 친족을 함께 처벌하는 것을 드라마에서 본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연좌제라고 하며, 헌법 제13조 제3항은 연좌제를 금지한다는 규정입니다.
다만 이 조항에는 ‘친족’의 행위라고 되어 있지만, 친족이건 아니건 다른 사람의 행위로 불이익한 처우를 받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또 형사처벌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신원조회를 통해 공무원 취임을 제한하거나, 어느 곳으로 이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불이익한 처우에 해당합니다. 연좌제 금지는 자기 책임의 원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북한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자식이 공무원으로 임용되지 못하도록 한다면 헌법 제13조 위반일까?>
읽기 자료
헌재 1999. 7. 22. 97헌바76등, 판례집 11-2,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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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관계를 파악해 보자.
관행에 의한 어업자의 지위인 관행어업권은 물권적 권리로서 그 발생, 변경 및 소멸이 모두 관습법에 따른 것이므로 행정당국에의 어업신고나 어업권원부등록과 같은 절차규정의 이행 여부에 따라 그 권리의 존속 여부가 좌우될 성질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단지 어업권원부에 등록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관행어업권을 박탈하는 것으로서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을 금지하는 헌법 제13조 제2항과 재산권의 사용, 수용 또는 제한에 관하여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는 헌법 제23조를 위반한 법률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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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소급입법과 부진정소급입법의 의미를 파악해 보자.
“소급입법은 새로운 입법으로 이미 종료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작용케 하는 진정소급입법과 현재 진행중인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작용케 하는 부진정소급입법으로 나눌 수 있는바, 부진정소급입법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만 소급효를 요구하는 공익상의 사유와 신뢰보호의 요청 사이의 교량과정에서 신뢰보호의 관점이 입법자의 형성권에 제한을 가하게 되는 데 반하여, 기존의 법에 의하여 형성되어 이미 굳어진 개인의 법적 지위를 사후입법을 통하여 박탈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진정소급입법은 개인의 신뢰보호와 법적 안정성을 내용으로 하는 법치국가원리에 의하여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아니하는 것이 원칙이고, 다만 일반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거나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워 보호할 만한 신뢰이익이 적은 경우와 소급입법에 의한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아주 경미한 경우 그리고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경우 등에는 예외적으로 진정소급입법이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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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기본권 제한은 위헌인가?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종전의 수산업법에 의하여 아무런 제한 없이 주장이 가능하던 관행어업권에 대하여 구 수산업법 시행 이후부터는 등록하여야만 주장할 수 있는 것으로 변경하고, 그에 관한 경과규정으로 2년간의 등록기간을 설정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구 수산업법의 시행일 이전까지 존재하던 관행어업권에 관하여 규율하는 바 없이 장래에 대하여 관행어업권의 행사방법에 관하여 규제할 뿐이므로 그 규정의 법적 효과가 시행일 이전의 시점에까지 미친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종전의 수산업법에 의하여 인정되던 관행어업권을 일방적으로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일정한 기간 내에 등록만 하면 관행어업권을 인정하여 주는 것이므로 이를 가리켜 재산권을 소급적으로 박탈하는 규정이라고 할 수 없고, 다만 그 행사방법을 변경 내지 제한하는 규정이라고 할 것이다.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구 수산업법 시행 이전의 법률관계에 관하여 규율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종래 인정되어 오던 관행어업권의 요건을 엄격하게 변경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등록만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므로 이를 가리켜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침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이 소급입법에 의하여 재산권을 침해하는 규정으로서 헌법 제13조 제2항과 제23조에 위배된다는 청구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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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급입법은 결단코 금지하는가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법학박사
기호일보 입력 2023.10.11 21:16
많은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을 떠올리면서 "소급입법은 ‘절대적으로’ 금지된다"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지식이다. 소급입법금지(遡及立法禁止)란 법령을 만들 때 그 법령을 이미 종결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을 말한다.
우리 헌법 제1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형벌불소급, 일사부재리), 제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소급입법의 금지). 즉, 헌법은 형사처벌, 참정권 제한, 재산권 박탈의 경우에 한해 소급입법의 금지를 규정하며, 그 밖의 경우에는 합리성 여부에 따라 소급입법이 제한될 수도 있고 허용될 수도 있다. 즉, 소급입법이라고 해서 무작정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건 아니다.
소급입법은 ‘진정소급입법’과 ‘부진정소급입법’으로 구분하는데, 전자는 새로 만들어진 법령이 이미 종료된 사실관계에 적용되는 경우를 가리키고, 후자는 새로 만들어진 법령이 현재 진행 중인 사실관계에 적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진정소급입법’은 금지되는 것이 원칙이며(단, 진정소급입법으로 인해 침해되는 상대방의 신뢰이익이 적거나 신뢰보호 요청에 우선시 되는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허용된다), ‘부진정소급입법’은 허용되는 것이 원칙이다(단, 소급효를 요구하는 공익상의 사유와 신뢰보호 요청의 교량 과정에서 신뢰보호의 관점에 의해 입법자의 형성권이 제약될 수 있다).
부연하자면 일반적으로 ‘부진정소급입법’은 개정된 새 법의 적용을 허용한다. 단, ‘부진정소급입법’이라도 소급효를 요구하는 공익상의 사유와 기존 법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이익을 비교형량했을 때 국민의 신뢰이익이 훨씬 큰 경우라면 헌법상 신뢰보호원칙 위반으로 새 법 자체가 위헌법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공익상의 사유에 비해 기존 법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이익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경우에는 위헌법령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 중 중앙회장 연임 관련 개정규정(단임제→연임 1회 허용)을 현임자에게 적용하도록 하는 것은 이른바 ‘비진정소급입법’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허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소급입법금지를 위반한 것이다"는 주장은 부당하다.
물론 ‘진정소급입법’이든 ‘부진정소급입법’이든 너무 자주 활용되는 것은 국민의 신뢰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소급입법에 의한 형사처벌, 권리제한·박탈은 법치주의 원리에 위배되고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의 이념에도 반한다. 그러나 신법이 구법보다 당사자에게 유리한 경우 및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소급입법을 허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국민의 대표인 입법권자에게 광범한 입법형성권 부여).
참고로 친일재산귀속법(정식 명칭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국권 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1904년 2월)부터 국권을 회복한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행위자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상속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법인데, 3·1운동의 헌법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2005년 12월 29일 제정됐다. 이에 반발한 친일파 후손들이 ‘소급입법금지의 원칙’ 위반을 이유로 헌법소원까지 냈으나 헌법재판소는 "친일행위로 인한 재산 환수 등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사회정의를 실현해 진정한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부여된 임무"라며 이들의 주장을 일축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귀속조항은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하지만, 진정소급입법이라 할지라도 예외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경우와 같이 소급입법이 정당화되는 경우에는 허용될 수 있다", "헌법 제13조 제2항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2011.3.31. 2008헌바141 등).